커피 한 잔에 스며든 도시의 감도
일본 여행의 목적이 명확했던 적은 없다.
그저 좋아하는 것들을 따라다녔다.
이번엔 카페였다.
거창한 투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도쿄와 교토, 그리고 오사카 골목마다 숨어 있는 카페를 찾아다니는 일은 생각보다 더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첫 번째 카페는 도쿄 시모키타자와.
구불구불한 골목 끝에 자리한 작은 카페.
간판도 없이 ‘COFFEE’라는 흰색 글자 하나만 새겨져 있었다.
문을 열자 은은한 재즈 음악과 로스팅 향이 가득했다.
직접 내린 핸드드립 커피와 치즈케이크를 주문했다.
커피 맛은 예상보다 깊고 진했다.
거기엔 시간을 천천히 끌어올리는 힘이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노트를 꺼냈다.
글을 쓰려다 멈췄다.
굳이 적지 않아도 이 순간은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커피는 점점 식어갔고, 나는 그 느린 온도를 천천히 음미했다.
카페는 단지 음료를 파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 도시의 기류, 사람들의 속도, 나의 상태까지 모두 커피 잔 속에 담겨 있는 듯했다.
그날 하루는 그 한 잔으로 충분했다.
카페마다 쌓이는 기억, 감성의 지도
다음 날은 교토로 향했다.
교토의 카페는 도쿄보다 더 조용하고 정적이었다.
가모강 근처 한 찻집 스타일의 카페에 들렀다.
이곳은 커피보다 분위기로 기억되는 곳이다.
엔틱한 가구와 목제 인테리어.
창 너머로 보이는 물결.
잔잔한 조명이 테이블 위를 부드럽게 감쌌다.
여기서는 말차 라떼를 주문했다.
쌉싸름한 맛과 부드러운 거품.
입 안 가득 번지는 교토의 시간.
맞은편 자리엔 나처럼 여행자처럼 보이는 여성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한 마디 말도 없었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공감이 형성됐다.
교토에는 이런 ‘조용한 공존’이 있었다.
혼자이되 고립되지 않은 공간.
카페는 그 느낌을 가장 잘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오사카로 향했다.
도톤보리의 화려한 거리 한쪽에 산뜻한 노란색 외벽을 가진 카페가 눈에 띄었다.
그곳은 활기찼다.
도쿄와 교토에서의 고요함과는 또 다른 결이었다.
사람들의 대화, 컵 부딪히는 소리, 에스프레소 머신의 증기음.
그 모든 것이 복잡하지만 따뜻했다.
카페라는 공간이 각 도시마다 이토록 다른 감정을 담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카페를 떠나며, 마음에 남은 온도
여행의 마지막 날.
나는 한 번도 갔던 적 없는 도시인 가나자와에 들렀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들어간 한 로컬 카페에서 이번 여행의 감정을 마무리하게 됐다.
그곳은 관광지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현지인들이 일상처럼 커피를 마시는 장소.
카운터 너머로 주인장이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했다.
블렌딩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창가에 앉았다.
커피는 무척 따뜻했고.
그 온기가 손끝을 지나 마음까지 전해졌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번 여행은 어쩌면 카페에서 보낸 시간들이 가장 깊었다는 걸.
명소보다 사람.
관광보다 호흡.
그것들이 커피라는 매개를 통해 나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카페를 나와 걷다가 한참 후에 다시 뒤를 돌아봤다.
특별한 간판도, 유명한 디저트도 없는 곳.
하지만 나는 기억할 것이다.
그날의 따뜻했던 잔 하나.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내 마음의 무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메모장을 꺼냈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카페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 이렇게 적었다.
“내 여행의 목적지는 결국, 커피 향 속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