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목적지는 도시가 아니다.
때로는 '어디에서 머무느냐'가 전부가 되기도 한다.
이번 일본 여행에서 나는 하루, 혹은 몇 시간의 숙면을 위한 공간이 아닌
여행의 정서와 무드를 결정짓는 '감성 숙소'를 찾고자 했다.
처음 찾은 곳은 교토의 한 작은 료칸이었다.
고즈넉한 골목 안에 위치한 이곳은 '타이쇼 시대'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고.
한참을 바라보게 되는 정원이 입구에서부터 나를 맞이했다.
체크인 절차는 간단했다.
주인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다다미방으로 안내했다.
방 안은 모든 것이 절제되어 있었다.
흰색 이불과 네모난 베개.
낮은 탁자 위엔 따뜻한 녹차가 놓여 있었다.
창밖으로는 손질된 정원과 작은 연못이 보였고.
그 소박한 풍경 속에서 나는 진정한 ‘여행의 속도’를 되찾았다.
저녁 식사는 숙소에서 제공하는 가이세키였다.
한 접시 한 접시 정성껏 차려진 요리는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맛도 맛이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과 계절감이 내 감정을 자극했다.
그렇게 하루는 천천히, 아주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도쿄 한복판에서 찾은 감성 미니호텔, 소소한 일상 속의 특별함
여행 후반부, 도쿄에서는 조금 다른 스타일의 숙소를 골랐다.
이름도 낯선 미니호텔.
하지만 예약 사이트 평점은 높았다.
도심 속 감성 공간이라는 키워드에 끌려 예약한 그곳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쿄의 속도에 감성을 입힌 곳'이었다.
호텔은 신주쿠와 하라주쿠 사이, 주택가 골목 끝에 있었다.
입구에 달린 작은 간판, 무인 체크인 시스템, 그리고 향긋한 아로마 향이 흐르는 로비.
방은 작았다.
하지만 작기 때문에 오히려 아늑했다.
조명은 간접등 위주로 설계되어 있었고.
커튼은 얇은 린넨.
침대 옆엔 나무 선반과 작은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그 모든 디테일이 ‘당신은 지금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밤엔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사 와 작은 테이블 위에 놓고 조용히 음악을 틀었다.
창문 너머로 도쿄의 불빛이 스며들었고.
그 순간, 이 방은 숙소가 아니라 '내 방'이 되었다.
혼자지만 외롭지 않았던 시간.
작지만 충만했던 공간.
그 하루는 도쿄에서의 기억 중 가장 따뜻한 한 장면으로 남았다.
숙소는 단순한 잠자리 이상의 가치가 있다
여행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숙소의 중요성을 안다.
화려하거나 고급스러울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나와 맞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그곳에서 내가 쉬고, 머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일본 여행에서 만난 두 곳의 감성 숙소는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교토의 료칸은 전통과 고요함이었다.
몸을 천천히 풀어내며 내면의 온도를 되찾는 장소.
반면 도쿄의 미니호텔은 도시의 빠른 리듬 안에서 잠시 멈춤을 허락하는 쉼표 같은 공간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혼자인 걸 인정하고, 그것을 누릴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여행에서 잠은 그냥 싸게 자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좋은 숙소는 여행의 절반을 만든다고.
그 공간에서 시작된 하루.
그 공간에서 끝난 하루.
그리고 그 공간이 남긴 여운은 사진보다 오래 기억된다.
이제 나는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숙소를 본다.
그곳이 곧 내 감정의 시작점이자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진짜 여행은 그 공간 안에서부터 이미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